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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6

고구려는 그 유명한, 알면 알수록 골때리는 나라임 조랑말만 있던 고구려 초기,툭하면 부여의 말을 훔쳤던 고구려인   쭈그려앉는 것을 좋아하는 고구려인(지금도 여전한 느낌..ㅋㅋㅋ)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는고구려사람의 인사법과 그 이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빵 ㅋㅋㅋㅋ   고구려가 맨날 털어가는 옥저ㅜ  고구려가 말아주는 옥저번성축제   고구려는 농사를 잘 안지었지만 집집마다 창고가 있었다? (부경)- 그것은 약탈물들 보관하던 창고 고구려는 감옥이 없나? 범죄자가 없었나?- 유죄 판결나면 바로 사형이라 감옥필요없음 고구려 지역에는 큰 말이 없었다?- 넵. 그래서 다른 지역의 큰 말들을 약탈했슴돠 고구려에는 왜 서옥제가 있었나서옥제 : 데릴사위제의 일종- 부모와 장성한 자식들이 약탈하러 가고나면집에 보호받아야하는 애들밖에 없어서 사위가 집을 지켜야 했기.. 2024. 12. 29.
[역사] 영원할 것 같던 독재가 끝났다. 연산군의 끝. 연산 12년(1506년) 9월 1일. 연산군의 광기어린 폭정으로 신하들의 분노는 커져만 가고결국 참지 못한 박원종, 성희안, 류순정 등 반정세력들이 규합,신하들이 연산군 폐위를 모의하여 거병에 돌입한다.거병 : 전쟁이나 병란을 위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것. 조선 최초의 신하들이 왕을 폐위시킨 중종반정.단 하룻밤의 반정으로 연산군은몰락해버린다.... 아니 근데, 그 무섭던 연산군이 왜 그렇게 쉽게 당했지요?물론 연산군도 말년에 위기감을 느꼈는지자기를 보호하려 준비를 철저히 했음.호위무사 병력을 늘리고 수시로 서면으로 보고 하게 하면서방어에 힘을 기울였지만그 대세라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음. 연산군의 몰락을 예감했는지 중종반정이 일어나자마자궁궐을 지키던 수많은 사람들이더이상 연산군을 지지해 줄 세력이 없음을 .. 2024. 12. 7.
[역사] 집현전 입사지원하실 분 승진은 힘들지만 근무환경이 좋고공부도 하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직장,그곳은 바로 집현전!집현전에서 새로운 신입을 모집합니다! 주요업무 : 학문연구 (전문성 및 국가정책에 대한 장기적 비전 키우기)업무시간 : 새벽부터 밤까지업무량 : 과도하게 많음 ☆장기근속 근무자 대환영★비전 : 실무관료되려면 좀 걸리지만자기가 원하는 공부도 할 수 있고나중에 영의정까지 올라갈 수 있음.(근데 20년 넘게 걸릴 수도. ㅎㅎ★)위치 : 경복궁 내 가장 경치가 좋은 경회루 앞과도한 업무에 지쳤을 때 호수보면서 휴식, 그리고 바로 일...+혜택 : 1. 왕실 진상품인 귤 하사조선시대 때 귤 귀한 거 다들 아시죠?근데 이 귀한 것을 입사시 하사해드립니다.2. 업무 중 조촐한 술자리 OK이것은 세종대왕께서 집현전에 내린 .. 2024. 12. 3.
[역사] 정약용,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by.정조 1783년 2월, 세자책봉을 기념해 생원진사과 시험이 열렸다전국의 수많은 유생들이 공무원(?)의 꿈을 꾸며 모였고22살의 정약용 역시 그 곳에 있었다완벽한 답안지를 써 성균관에 입학하게 된 정약용그 기쁨도 잠시,+임금님이신 정조께서 격려차 너무 자주 오심 ㅠ격려해주시는 건 너무 감사하지만자꾸 격려가 질문이 되고 당연히 질문의 수준은 너무 높고그러다 토론의 장으로 이어지고...(임금님이랑 토론이라니 너무 무섭잖아;ㅁ;) 정조의 질문퇴계이황과 율곡이이의 이기론 중 어느쪽이 더 맞는가?지금도 어려운 질문이고국사책에서도 가장 난코스인 부분을유생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보라 함후덜덜ㄷ덜ㄷㄷ 왕이 지켜보고 있다 여기서 대부분의 유생들은 퇴계이황의 학설이 옳다하였다 함.조선시대 당시 붕당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 2024. 12. 1.
[역사] 탐관오리가 왕실 최측근인데, 목을 칠깝쇼? 1794년 조선에 아주 아주 지독한 흉년이 찾아왔다.안그래도 힘든 백성들은 더 큰 가난과 굶주림에 고통스러워하였고이에 정조는 백성들을 위해 구휼 대책을 시행하기로 한다.구휼 : 빈민이나 이재민에게 금품을 주어 구제하는 것그러나 어딜가나 말 안듣고 비리저지르는 나쁜놈들이 있기 마련.정조는 자신의 정책이 잘 시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여전국에 암행어사를 파견!! 그 전에 잠깐 공부!이 당시 암행어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나면 미리 대비할까봐1명씩 순차적이 아니라 15명을 동시파견했었다한다.그래서 한 고을에 두 세 명씩 파견할 때도 있었다고.애니웨이,그렇게 어사 박문수, 어사 이몽룡을 비롯해 1794년 10월-우리가 아는 정약용 또한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파견을 나간다(정약용도 암행어사였다니) 암행어사 출두요~!네 이.. 2022. 8. 25.
[인물] 조선 최초의 여성의사 김점동 -펌- 한국의 위인김점동은 1876년 서울에서 김홍택이라는 사람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자들을 위한 학교 이화학당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딸들 중에 가장 똑똑한 셋째딸을 이화학에 보낸다. 이화학당에 온 학생들중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온 사람은 김점동밖에 없었다고 하니 김홍택도 그 당시 사람치고 상당히 깨어있던 사람인걸로 보인다.1886년 당시 이화학당그렇게 10살의 나이로 이화학당에 들어온 김점동은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턴을 처음 보고 겁을 먹기도 했다고. 당시 서양인들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었고자신을 난로에 집어던져 죽이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스크랜턴의 친절한 얼굴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고 김점동은 회상했다고 한다. 김점동은 이화학당을 다니면서 영어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 2022.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