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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흥미ㅁ

[역사] 성질머리는 더럽지만 동생바보였던 오빠 숙종에 대하여

by 리을미음 2024. 12. 12.

예전 사극에서 본 숙종인현왕후장희빈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는 우유부단 왕처럼 그려졌는데

실제로는 그런 거 전혀 아니고요,

오히려 얄짤없이 잔혹했던,

엄마인 명성왕후도 인정한 성질머리였다고 한다쥬.

 

사진과 내용은 무관합니다요

사극 '대박'의 숙종, 최민수가 제일 비슷하게 고증한 거라하니

완전 후덜덜하지 뭐

 

송편일화라던가 송시열에게 사약먹인 일이라던가

워낙 성질이 더러워 궁녀들이 머릴 빗겨줄 수가 없어

엄마인 명성황후조차 으이그!! 때리면서 머릴 빗겨줬다는

일화만 봐도 아주 그냥 K-성질머리 King 성질머리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엄마 성격을 닮은 것도 있지만

정통성이 어마어마했기 때문!

조선시대 정통성 끝판왕은 숙종이오.

왕의 장남(외아들)의 장남(외아들)!

어머니도 엘리트 중에 엘리트! 

세자빈에서 중전까지!

 

그런 그였기에 어린 나이에 왕이 된 후에도

신하들에게 휘둘리긴 커녕

수렴청정따윈 발로 뻥차버리고 왕권을 세게 휘둘렀다는 사실!

그래서 더 성격이 안좋았능가봉가

 

그런 숙종이지만 내 여동생에게만은 따뜻했던 남자

 

숙종에겐 3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명선공주와 명혜공주가 어린 나이에

모두 요절을 함

(명선공주가 죽은지 3개월 만에 명혜공주가 죽었다 함ㅜ) 

 

이제 남은 동생은 명안공주 한 명 뿐인데

명안공주가 8살 때 아빠 현종마저 돌아가시니

(당시 숙종은 14살)

울 막내동생, 너무 애기고 아빠 사랑을 못받는 게 너무 불쌍하고ㅠ

애틋하고 가엾어 아버지처럼 보살피고 그렇게 예뻐했다 함.

 

청나라에서 고급비단 선물받으면 중전, 후궁보다 

명안공주에게 먼저 주고

혼인하고 나가 살 집을 너무 으리으리하게 지어주려다

대신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땅 갖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어마어마하게 땅을 주고,

(우리 오빠였으면...ㅠ)

 

13세 때 혼인하고 궁을 나가게 되자

시집간 누이 명안공주에게 보낸 숙종의 다정한 편지도 남아있다ㅠ

 

- 새 집에 가서 밤에 잘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려보내고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하노라.

너도 우리를 생각하느냐?

이 병풍은 오늘 보내마 했던 것인데

마침 아주 잘 만든 것이 있으니 치고 놓아라.

날 추으니 몸 잘 조리하여 기운이 충실하면

장래 자주 들어올 것이니 밥에 나물 것 하여 잘 먹어라-

 

보기만해도 그리움과 걱정이 한가득이다.

내가 아는 현실남매와는 너무 달라ㅠ

실제로 아버지 현종도 누이들과 사이가 좋았다하더이다//

 

현종이 쓴 명안공주 작명단자/오래 살라는 기원의 뜻이 담긴 기수태다재가 옆에 써있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 공주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이 잘 없는데

명안공주는 조선시대 유일하게 작명단자가

<작명단자 : 왕이 자녀의 이름을 직접 지어서 쓴 어필>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숙종이 하사한 물품이나 어머니인 명성왕후가 쓴

편지들까지 보존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거 보면

정말 소중하게 아껴서 보존된 것이 아닐까?

 

하나밖에 안 남은 명안공주를 엄청 예뻐했다는

어머니 명성왕후의 편지.

역시나 명안공주가 시집간 후에 쓴 편지인데

잘 보존되어있다고 함

 

- 글씨 보고 잘 있으니 기뻐하며 친히 보는 듯

든든탐탐 반갑기 가이없어 백번이나 잡아보며 반기노라.
아무 때나 이리 오래 못 본 적이 없더니

달포 되어가니 더욱 섭섭 그립기 무장장하노라.

너는 주인집 극진이 하옵신 덕을 입어 역병을 무사히 보내니

세상에 이런 기쁜 경사 어디 있으랴.
너는 효도하는 딸이 되어 우리를 기쁘게 하니

더욱 탐담 어엿쁘기 끝이 없어 하노라.
날도 춥고 하니 부디 조심하고 음식도 어른이 이르는 대로

삼가 잘 먹고 잘 있다가 들어오너라.

타락묵과 전 가니 먹어라-

 

언제나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었던 딸이

궁을 나가니 너무 보고싶었던 어머니ㅠ

숙종이나 명성왕후나

편지 끝엔 늘 뭘 먹으라는 것이 너무나 한국인이고요

 

그러나

오라비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도

위의 언니들처럼 몸이 약했던 명안공주는

23세 나이에 죽고 만다ㅠㅠ

 

명안공주가 죽자 숙종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슬퍼하며

10일간 육식을 금하고 입관전 조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신하의 만류에도 불구,

공주 집에 친히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명안공주 묘비에 그리워하는 제문을 새기고 ㅠㅠ

 

-언니 명선과 명혜가 잇달아 죽음에 엄청난 슬픔을 가누지 못했는데,
이제 배필을 만나는 예를 올려서 화락한 금슬을 이루고

장수를 누릴 것을 기약했는데,
하루아침에 이와 같은 기별을 듣다니.

유유한 나의 정으로 그대를 일찍 영결하려니

소리쳐도 응함이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거늘,
저 푸른 것이 하늘인데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환하고 밝은 세상을 버리고 저 어둡고 캄캄한 세상을 향해 가니,
천장지구토록 이 애통한 심정 감내하기 어렵구나-

 

 그 후에도 여전히 동생의 시가도 돌봐줬다 하더라.

동생 남편 오태주가 잘못했을 때 오태주만 봐주고

나중에 죽었을 땐 동생과 합장은 물론이오,

직접 지은 비문을 세워줬다고 하니

이거슨 모두 내 동생 명안공주를 위해서였다.

어흑 ㅠ

 

숙종과 명안공주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명안공주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았을텐데ㅠ

하고 괜히 내 동생같아져서 더 슬퍼진다.

종은 성질머리가 더럽기로 유명했지만

동생을 이리 예뻐했다니 그것도 참 재밌다.